복지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 논의
장애계 기자회견 열어 “원안 통과” 외쳤지만… 끝내 통과 안 돼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탈시설지원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안(아래 권리보장법)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장애계는 탈시설지원법과 권리보장법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계의 염원인 권리보장법(장혜영, 최혜영 의원)과 탈시설지원법(최혜영 의원)이 26일 1시 30분, 제395회 국회 임시회 제1차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논의에만 그쳤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또 탈시설지원법에 대해 ‘준비 없는 탈시설’과 ‘10년 내 시설 폐쇄 조항’을 문제 삼으며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권리보장법 : 장애인 시혜와 동정의 대상 아닌, 권리 주체로
현재 발의된 권리보장법은 세 건이다. 장애계는 그중 장혜영 정의당 의원(2021. 9. 27. 의안번호 2112707),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2021. 11. 18. 의안번호 2113420)이 낸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의원이 발의한 ‘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의 권리를 기준으로 지역사회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이 지닌 장애인에 대한 시혜와 동정으로서의 복지가 아닌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초점을 맞췄다. 법안에서는 장애를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배제, 차별의 현상으로 본다. 의학적 정의에 따른 장애인등록제를 폐지하고 ‘장애서비스 이용자’라는 관점으로 장애서비스 및 권리옹호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안(2021. 10. 14. 의안번호 2112843)은 정부안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장애인복지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장애를 의학적 관점으로 정의하며, 장애등록제를 그대로 유지한다. 무엇보다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할 장애인 탈시설 권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제도를 실현할 재원확보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 탈시설지원법 : 탈시설 권리 실현을 위한 구체적 근거 마련
탈시설지원법은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2020. 12. 10. 의안번호 2106331) 한 건이 발의됐다.
법안은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의 인권침해 실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과 그 운영법인을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10년 내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8월 정부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법안 통과에 기대를 걸었으나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되었지만 법안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 와중에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에도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반대하며 탈시설 용어에 대해 “시설을 죄악시하는 개념을 법 제목으로 갖고 가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탈시설지원법은 이번에 열린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간사)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장애계는 강기윤 의원에게 문자와 전화로 항의했고, 탈시설지원법이 가까스로 상정됐다.
다만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의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주거서비스지원법안(2021. 11. 5. 의안번호 2113159)’도 함께 상정됐다. 이 법안은 장애계에서 비판하는 수용시설을 주거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지역사회 서비스의 부재로 시설에 사는 것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라고 보면서 거주시설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장애계 기자회견 열어 “원안 통과” 외쳤지만… 끝내 통과 안 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던 27일 오후 2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 등 장애계는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 원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해 3월 16일부터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양대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408일째(27일 기준) 이어오고 있다.
어린 시설부터 장애인거주시설에 살았던 박경인 탈시설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은 23살에 그룹홈(장애인공동생활가정)에서 탈시설했다. 그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시설에서의 삶”이라고 말하며, 시설에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위한 법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룹홈에서 탈시설 할 때 저는 정부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급비와 바리스타 일을 해서 돈을 모아서 자립했습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저처럼 탈시설 과정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시설에 돈을 주지 말고,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환경을 만드는 데 지원해야 합니다. 지원주택, 활동지원, 일자리, 친구관계가 잘 어우러지면 탈시설한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두 법을 당장 제정하고 탈시설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탈시설한 장애인들은 한결같이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중요성을 말한다. 하지만 이종성 의원을 비롯한 거주시설협회와 일부 장애인부모들은 ‘탈시설은 무책임한 강제 퇴소’라거나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의 탈시설은 인권유린’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탈시설 반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약에서는 시설 존재 자체가 인권유린이며, 즉각 시설수용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헝가리, 멕시코, 베네수엘라, 자메이카, 스위스 등 5개 국가에 대한 협약 이행 심의를 했다. 당시 심의에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중점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오는 8월 협약 이행 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8월 심의에서도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보장이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사정을 설명하며 최 사무국장은 “탈시설은 소수의 한국 장애인들이 외치는 권리가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장애인의 요구다. 언제까지 국가가 만들지 못한 사회서비스 탓을 하면서 장애인에게 인권유린을 당하라고만 말하는 것인가. 이는 무책임하다”라며 “(제2법안심사소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요구한다. 여러분이 방임했던 책임을 다하기를 바란다. 시설 폐쇄 10년도 길다. 지금 당장 모든 시설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하루라도 빨리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라며 양대법안 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국회에 전달되지 못했다. 이날 해당 법안들은 제2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이번에도 이종성 의원은 ‘준비 없는 탈시설’과 ‘10년 내 시설 폐쇄 조항’을 문제 삼으며 탈시설지원법 통과를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은 ‘탈시설에 관한 단독법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제시해 향후 법 통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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